교육의 화두로 삼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공안(화두)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다.
공안은 화두라고도 하는데,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이다.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공안만 가지고도 평생을 참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몇 자 안 되는 공안일지라도 그 속에는 깨달음의 이치가 숨어 있어 그 뜻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공안의 원래 뜻이 공공기관의 문서라는 점에서 보면, 일단 깨닫기만 하면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그 뜻이 명백해지는 것이 공안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문자의 뜻에 얽매이는 순간 깨달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다시 관념에 빠진다. 선종에서는 이러한 관념의 세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안은 최소한의 언어만을 사용한다
줄탁동기는 이러한 깨우침과 관련된 공안이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줄'은 바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병아리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탁'은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알껍질을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H.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줄탁지기·줄탁동시라고도 하고, 줄탁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낮은 곳이 바다 되고, 높은 곳이 산 된다. [성철 스님]
“바다는 낮아야 세상 모든 물이 모여든다. 그처럼 나를 낮추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로 모여든다.
스스로 높이면 세상이 나를 경멸하지만, 스스로 낮추면 세상이 나를 존경한다.”
행원자이(行遠自邇) [중용(中庸)]
行(갈 행), 遠(멀 원), 自(스스로 자), 邇(가까울 이)
군자의 도(道)란 이를테면 먼곳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또 이를 테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데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 벽如行遠必自邇,벽如登高自卑]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행원필자이 등고필자비) [중용(中庸)]
군자의 道(도)는 비유하면 멀리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고, 높은 데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즉, 道(도)를 지키자면 반드시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나하나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토대로 유홍준 교수가 구절을 좀 고쳐서, 문화유산을 보는 자세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홍준 교수의 말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말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의 머리말 일부입니다.
이로부터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유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2권에서 정정하고 보완한 대로, 이 구절의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입니다.
이는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이정민훈장 꾸벅 ^.^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다.
공안은 화두라고도 하는데,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이다.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공안만 가지고도 평생을 참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몇 자 안 되는 공안일지라도 그 속에는 깨달음의 이치가 숨어 있어 그 뜻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공안의 원래 뜻이 공공기관의 문서라는 점에서 보면, 일단 깨닫기만 하면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그 뜻이 명백해지는 것이 공안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문자의 뜻에 얽매이는 순간 깨달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다시 관념에 빠진다. 선종에서는 이러한 관념의 세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안은 최소한의 언어만을 사용한다
줄탁동기는 이러한 깨우침과 관련된 공안이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줄'은 바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병아리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탁'은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알껍질을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H.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줄탁지기·줄탁동시라고도 하고, 줄탁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낮은 곳이 바다 되고, 높은 곳이 산 된다. [성철 스님]
“바다는 낮아야 세상 모든 물이 모여든다. 그처럼 나를 낮추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로 모여든다.스스로 높이면 세상이 나를 경멸하지만, 스스로 낮추면 세상이 나를 존경한다.”
행원자이(行遠自邇) [중용(中庸)]
行(갈 행), 遠(멀 원), 自(스스로 자), 邇(가까울 이)
군자의 도(道)란 이를테면 먼곳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또 이를 테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데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 벽如行遠必自邇,벽如登高自卑]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행원필자이 등고필자비) [중용(中庸)]
군자의 道(도)는 비유하면 멀리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고, 높은 데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즉, 道(도)를 지키자면 반드시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나하나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토대로 유홍준 교수가 구절을 좀 고쳐서, 문화유산을 보는 자세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홍준 교수의 말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말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의 머리말 일부입니다.
이로부터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유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2권에서 정정하고 보완한 대로, 이 구절의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입니다.
이는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이정민훈장 꾸벅 ^.^